세움

성탄절 예화 모음

성탄절 예화 모음

크리스마스 성탄절 트리

성탄은 사랑이다

옛 소련의 소년합창단 일원으로 미국에 공연을 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한 소년이 코마(coma·의식 없는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그의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잡고 “미르히호프! 미르히호프!”하고 밤이 새도록 불렀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년의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으며, 안면근육이 씰룩거리면서 반응을 보이더니 이틀 후 소년이 깨어나게 됐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이런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소년의 남은 의식이 재에 묻힌 불씨와 같은 상태에 있다가 어머니의 그 사랑을 느끼는 순간 기름을 부은 것같이 다시 타올랐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사랑은 그 무엇보다도 커다란 기쁨과 보람과 환희를 주기 때문에 기적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가장 외로운 장소는 사랑이 없는 마음 구석이다.

모든 사람이 애타게 기다리는, 사랑으로 충만한 성탄이 다가왔다. 성탄은 사랑이다. 우리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순수한 사랑이다. 예수님이 하늘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바로 사랑이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 성탄은 곧 하나님의 사랑이다.

사랑의 성탄절

어느 마을에 착하고 성실한 구두 수선공 남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성탄절 전날 밤 그의 꿈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내일 당신을 방문하고자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침이 되자 그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청소도 깨끗이 하고, 아끼던 주전자도 잘 닦아 난로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지나도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거리엔 누더기 옷을 입고 힘없이 걸어오고 있는 한 여인만 보였습니다. 그는 그 여인을 측은하게 여겨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그 여인의 발은 빨갛고 시퍼렇게 얼어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여인에게 신발을 선물했습니다. 또한 배가 고파하는 여인을 위해 빵과 스프를 데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여인은 행복하고 감사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어느덧 캄캄한 밤이 되었지만 기다리던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실망을 마음에 담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어젯밤 꿈의 그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를 보았지요?”“아니요, 어디에 계셨습니까?” “나는 오늘 당신에게 찾아가 신발과 빵과 스프와 사랑을 선물 받았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베푼 따스한 사랑 정말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을 섬기듯이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십시오. 또한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성탄절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 어려운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게 하소서.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성탄절에 오신 주님의 사랑

어느 시골 마을 교회에 인지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소년이 출석하고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이 아들이 행방불명됐다며 찾으러 왔다. 온 교인을 동원해 일일이 묻고 찾아다녔으나 없었다. 며칠 후 호수에 시신이 떠올랐다. 얼음이 얼었다 녹았다 할 무렵 얼음판을 타다 그렇게 된 것 같았다. 장례식에서 ‘지극히 작은 자’(마 25:40) 하나를 잘 돌보지 못한 죄를 회개하며 온 교인이 울었다. 동네 사람들도 가족과 함께 울었다. 그리고 그 눈물들이 소문이 되어 전도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요즘 등하교 길에서 장애를 가졌거나 공부를 못하는 이른바 ‘루저’ 아이를 ‘잘난’ 학생들이 따돌리고 때리며 그 광경을 동영상으로 찍어 즐긴다니 한심하다. 하늘이 분노할 이런 ‘컴피티션(Competition·경쟁)’ 세상을 치료해 살릴 길은 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컴패션(Compassion·긍휼)’과 사랑이다. 성탄에 오신 주님은 우리에게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 6:36) 하셨다.

<국민일보/겨자씨>

성탄의 감동

19세기에 미국 교회에서는 대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대부흥운동의 주역은 무디 같은 위대한 부흥사뿐 아니라,

복음성가와 간증으로 큰 감동을 불러일으킨

생키(Ira Sankey)와 같은 이가 있습니다.

어느 해 생키는 12월 24일 증기선을 타고

멜러웨어 강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유명한 생키 가 배에 탄 것을 보고는

노래를 불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크리스마스의 캐럴 “목자의 노래(Shepherd Song)”를 불렀습니다.

그러자 한 남자가 앞으로 달려 나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물었습니다.

“당신은 전쟁 때 북군에 있었죠?

나는 당신을 기억합니다.”

생키가 물었습니다.

“아니, 내가 북군에 종군한 것을

당신이 어떻게 아시오?”

그 남자가 대답하였습니다.

“전쟁 중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나는 남군의 척후병으로 북군 진지에 접근했습니다.

달이 밝아 마치 낮처럼 환한 밤이었습니다.

한 북군 병사가 언덕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죠.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접근해서 총을 겨누었습니다.

그런데 그 병사가 노래를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 부른 그 “목자의 노래”였습니다.

바로 그 노래를 부른 이가 바로 지금 당신이 틀림없습니다.

당신이 2절을 부를 때쯤에 나는 당신을

더 이상 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던 어머니가

“살아서 돌아오너라. 기도하겠다.”고 하셨는데,

북군 병사의 어머니도 같은 하나님을 믿고 같은 기도를

아들을 위하여 할 것을 생각하니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적이 아니라 같은 신앙인으로서 새롭게 만난 것입니다.

성탄의 캐럴은 아군과 적군의 벽을 허물어뜨린 것입니다.

성탄의 기쁨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양심을 회복시켜 줍니다.

아름다운 찬송은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마음을 일으켜 줍니다.<연>

성탄절의 감격

1870년 프랑스와 독일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도 성탄절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전투를 하다가 밤이 되어 각자 진영으로 돌아가 내일의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날 저녁은 성탄절 이브였습니다.

병사들이 밖으로 나와 하늘의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며 어린시절 성탄절의 낭만과 추억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프랑스군 참호에서 한 병사가 일어나 아름다운 테너의 목소리로 찬양을 했습니다. “오 거룩한 밤 별들 반짝일 때 거룩한 주 탄생한 밤일세.” 그러자 독일군 참호에서도 한 군병이 바리톤의 음성으로 찬양을 합니다.

이렇게 양쪽에서 두 사람이 대표로 찬양을 하자 양국의 온 군병들이 총칼을 내려놓고 함께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군병들은 전쟁터에서 눈물을 흘리며 찬양하면서 성탄절의 감격을 느꼈습니다. 찬양으로 인하여 전쟁은 휴전이 선포됐고 지금도 양국은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오 주여,아직도 긴장과 대치로 맞서고 있는 우리 조국에도 이러한 성탄의 평화와 감격이 임하게 하소서.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